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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프전
페르시아만에서 발발한 전쟁이라고 해서gulf전이라고 합니다.
걸프는 영어로 “만(灣)”입니다.
걸프전이 일어난 배경은 이라크가 쿠웨이트에서 140억불 빌립니다. 그래도 이라크는 돈이 부족해 140억불을 차감하고 100억불을 더 빌려 달라고 합니다. 쿠웨이트에서는 거부를 하면서 5억불만 더 빌려 줍니다. 이에 화가 난 후세인은 1990년 8월에 쿠웨이트를 침공합니다.
국제 사회에서는 쿠웨이트 점령은 국제적 비난을 불러 일으켰으며 유엔 안보리에 의해 즉각적인 이라크 제재를 유발합니다.
유럽 선진국의 입장에서 보면 중동에서 계속 전쟁이나 내전이 일어나기 때문에 석유 시추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강대국들은 중동의 안전화 시킬 필요가 있었습니다.
걸프전은 40여일만에 일반적인 승리끝나게 됩니다. 이라크 vs 다국적 군이 싸우는 전쟁이라 이라크입장에서는 이길 수가 없는 전쟁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전쟁에서는 특이한 것이 미국 CNN에서 전세계 생방송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걸프전을 “하이테크 신무기 실험장”이라고 합니다. 당시 미국에서 개발`된 많은 신무기를 걸프전에서 총동원하여 마치 무기 자랑과 실험을 하듯이 이용한 것을 CNN보도를 한 것이죠. 당시 전 세계에서 전쟁을 지켜본 사람 10억명이라고 합니다.
또 하나의 첨단 장비중 하나는 전쟁이 시작되고 미국기상청에서 10년간 이라크의 기상변화를 분석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급격하게 변하는 사막의 기후를 최첨단 컴퓨터가 분석을 해서 온도, 습도, 날씨, 바람방향 등을 분석하여 작전을 펼치는데 많은 도움을 줬다고 합니다.
최점단 무기들을 알아보면 지금도 우리에게 익숙한 스텔스전투기, 아파치헬기, 패트리어트 미사일, 토마호크 순항 미사일 등이 걸프전에 첫 선을 보였다고 합니다.
그 중에 아파치 헬기는 전쟁이 시작되고 지상 15m로 날아가서 이라크 레이다 기지를 폭격함으로써 걸프전에서 제공권을 모두 장악했습니다. 레이다 기지가 대부분 파괴된 이라크에서는 다국적군의 비행기 상황을 정확히 알 수가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미국의 학살 지적해보겠습니다.
다국적군에 상대가 되지 않던 이라크는 쿠웨이트에서 1991년 2월 27일에 철수하기로 결정합니다.
수 만명의 이라크군이 80번 고속도로를 통해 철수하는데 미국은 그곳을 공중 폭격하게 됩니다. 수 만명의 사람이 죽었고 전세계에서 미국이 학살을 했다는 비판을 듣게 됩니다. 일명 “죽음의 고속도로”로 불리는 사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