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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건국 이후 이성계

정보의 인포메이션 2018. 6. 3. 14:48

한양으로 조선을 옮긴 이후 이성계는 정도전과 무학대사에게 수도를 완성하도록 지시를 합니다.


이때 무학대사와 정도전 사이에 약간의 의견대립이 생깁니다.


주산을 어디로 정할 것인지에 대한 무학대사와 정도정의 의견대립인데요.


정도전은 주산을 북악산으로 하여 궁궐을 남쪽으로 바라보게 하고 싶었습니다.


성리학에서 보는 것은 성인은 남면을 하는 것에 착안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무학대사는 주산을 주왕산으로 하여 궁궐로 하면 동쪽을 바라 보게 하고 싶었습니다.


이때 이성계의 신임을 받는 정도전이 이성계에 자신의 뜻을 말하고 허가를 받으면서 주산을 북악산으로 정해지게 됩니다.


한양에 궁궐을 완성한 뒤 이성계는 기뻐서 술에 취해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주 궁궐인 경복궁을 이름을 지어보라고 했습니다.


정도전은 이 말을 듣고 “성군이 기쁨에 술에 취해 만년토록 큰 복을 누리시라”는 뜻으로 주 궁궐을 경복궁이라고 했습니다. 술에 취한 이성계는 그 자리에서 승낙을 해버립니다. 그래서 오늘날 경복궁이라는 이름이 붙여지게 됩니다.


그리고 근정전은 부린지런하게 정치를 하라는 뜻으로 근정정으라는 이름이 붙여지게 됩니다.


이렇게 기쁜 나날이 계속되는가 했지만 이성계에게 불운이 찾아 옵니다.


이성계는 세자책봉을 자신의 두 번째 부인에게서 난 막내를 지목을 하게 되면서 이방원의 분노를 하게 됩니다.


이방원은 화가 나서 일명 “왕자의 난”을 일으키게 되고 자신의 형제를 비롯한 정도전까지 죽이게 됩니다. 그리하여 조선의 두 번째 왕이 이방원이 되게 됩니다.


이에 이성계는 가장 사랑하는 막내아들과 자신의 가장 믿는 정도전을 이방원이 죽인 것에 분노하여 이성계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는 말을 남기고 함흥으로 가버립니다.


이방원은 자신이 부모에게 효도를 하면서 백성을 잘 다스려야 하는데 자신은 부모와 등을 지는 모습을 보이게 되어 백성과 다른 대신들에게 체면이 서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방원은 아버지가 계신 함흥으로 차사를 보내는데 이성계는 차사가 오는 대로 죽여버립니다.


이때 생겨난 말이 “함흥차사”입니다.

결국은 박순이라는 사람이 어미말과 새끼말을 데리고 가서 어미말이 떠나가니 새끼말이 울부짖는 모습으로 이성계를 회유하여 다시 경복궁으로 모시고 왔다고 합니다.


이성계의 무덤인 건원릉에는 아직도 억세풀이 자라고 있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태조 이성계의 유언이 “고향에 있는 억세풀을 내 무덤에 심어 달라”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이성계의 무덤에는 잔디 대신에 억세풀이 자라고 있다고 합니다.


야심한 정치가이면서 혁명가이며 최고의 지도자였던 이성계입니다. 그의 일생은 찬란했지만 노후에 후계자 계승 부재로 인해 쓸쓸한 죽음을 맞는 이성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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