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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코 본문
모르코
수도 : 라바트
언어 : 아랍어
면적 : 446,550㎢ 세계58위
인구 : 약 36,192,000명 세계40위
GDP : 1,181억$ 세계59위 (2018 IMF 기준)
기후 : 기후는 우기와 건기로 구분
종교 : 이슬람교(수니파, 98.7%), 기독교 1.1%
기후
북동부에서 서남부로 해발 4,000m의 아틀라스 산맥이 길게 뻗쳐 있고, 남쪽으로는 사하라 사막이 알제리 국경에서부터 모리타니아 국경과 접한 대서양까지 연결되어 있다. 아틀라스 산맥 서쪽과 모로코 북부 및 중서부 대서양 연안지역에 전체 국민의 70% 이상이 거주 하고 있다.
기후는 우기와 건기로 구분되며, 지역별로 다양한 특성이 나타난다. 우기는 11월~4월로 온난다습(평균 15˚)하고, 건기는 5월~10월로 고온건조(평균 28˚)한 특징을 보인다.
가장 더운 달은 8월(18~28˚)이고, 가장 추운 달은 1월(8~17˚)이다. 가장 건조한 달은 7월(평균 강우량 1㎜)이며, 가장 습한 달은 12월(평균 강우량 86㎜)이다. 북부지역은 겨울에 온난다습하고 여름에 고온건조한 지중해성 기후의 특색을 보이며, 중부지역은 겨울에 한냉하고 여름에는 고온건조한 대륙성 기후의 특색을 보이고 있다. 남부지역은 사막 기후로 고온건조하고 일교차가 심하
다.
풍습
모로코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인구 규모가 큰 편에 속한다. 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는 2014년 기준 카사블랑카(Casablanca)로 약 335만 명의 인구 수를 기록하고 있다.
그 뒤를 이어 페즈(Fez)가 111만 명, 수도인 라바트(Rabat)가 57만명을 기록하고 있다. 인구 증가율은 약 1.75%(2017년 추계)로 아프리카 대륙에서 낮은 인구성장률을 보이는 국가군에 속한다.
모로코에는 프랑스인(人)을 중심으로 10만 명 이상의 외국인이 거주하며, 주민은 베르베르계(系)와 아랍계로 나뉜다.
아랍인 60%, 베르베르인 36%, 유럽인·유대인·흑인 등이 4%이나, 아랍인과 베르베르인은 실제로는 양자를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혼혈이 심하고, 산지를 중심으로 인구의 36%가 베르베르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그것으로 베르베르계의 총인구를 추정하고 있다.
일찍이 남쪽으로부터 도입된 흑인 노예와도 혼혈하여 피부색은 베르베르계의 백색으로부터 흑색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나 피부색에 따른 인종차별은 없다.
공용어는 아랍어와 베르베르어이며 상용어는 프랑스어로서 주민 다수가 구사한다.
북부 지중해 연안과 남부 해안지방에는 에스파냐어도 보급되어 있다. 종교는 온건한 수니파 이슬람교가 국교(國敎)로 99%의 주민이 신봉하며 기독교도는 1%가 있다. 2006년 기준으로 약 55%의 인구가 도시에 거주한다.
역사
모로코 원주민인 베르베르인(人)의 고대사는 분명하지 않다. 페니키아인과 카르타고인이 해안에 거점을 만들고 로마인도 한때 모리타니 부근의 해안지대를 지배하였다.
아라비아에서 진출해 온 이슬람교(敎)의 군대가 모로코를 정복한 685년 이후 베르베르족(族)도 이슬람화(化)되어 711년 에스파냐를 공격하였다.
740년경부터 소왕국으로 분열되었으나 788년 이드리스 왕조가 통일하였다. 11세기에 알모라미드왕조가 마라케시를 수도로 에스파냐에서 세네갈강에 이르는 광대한 제국을 건설하였으나 12세기에 알모하드왕조로 교체되었다.
그러나 13세기에 들어 에스파냐에서 그리스도교도에게 패배한 이 왕조는 쇠퇴하고 메리니드왕조가 뒤를 이었다가 15세기 후반부터 16세기 중엽에 걸쳐 와타시드왕조가 지배하였다. 이 시대에는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의 침략을 받았고 오스만투르크의 압력에도 저항하였다.
1830년 알제리가 프랑스령이 된 후 모로코는 서유럽 국가의 분할경쟁의 대상이 되었다.
특히 1880년대에는 침략의 대상이 되어 1904년 프랑스·에스파냐의 협상을 거쳐 1912년 프랑스와 에스파냐의 보호령으로 분할되었다. 모로코의 민족주의는 1921∼1926년 아브드 엘크림의 반란을 계기로 조직화되었고, 다시 제2차 세계대전 후 반(反)프랑스 해방투쟁을 거쳐 1956년 3월에 프랑스로부터 독립하였다. 같은 해 4월에는 에스파냐도 모로코의 독립을 인정하고 북부 보호령의 시정권(施政權)을 포기하였다. 또 그해 10월에는 국제지대(國際地帶) 탕헤르, 1958년 4월에는 에스파냐의 남부 모로코령도 회복하여 입헌군주국 모로코의 영토는 통일되었다.
1961년 사회주의적인 국왕 벤 유세프가 병사한 후 그의 아들 하산 2세가 즉위하였다.
그 무렵부터 모로코는 우익민족주의로 전향하여 모리타니·알제리와 분쟁을 계속하였으나 그후 우호적인 관계를 맺었다.
또 1969년 에스파냐령 이프니가 정식으로 반환되었으며, 1976년 4월 에스파냐령 사하라(西사하라)의 북쪽 반을 병합하였다. 이후 서부 사하라 지역의 병합을 위한 국가적 노력이 진행되고 있으나 UN과 인접 관련국의 반대로 현재 답보상태에 있다. 하산 2세가 사망하자 왕세자인 모하메드 6세가 1999년 7월 즉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