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 3대 도적
1. 홍길동
학창시절 허균의 소설 홍길동전을 배우면서 우린 모두 허구의 소설로 알고 있습니다.
특히, 홍길동이 도술을 쓰는 장면들이 연출되면서 허구일거란 믿음은 더욱 굳건해졌습니다.
그러나 홍길동은 연산군일기에도 기록된 실존했던 도적입니다.
실존했던 홍길동과 소설속의 홍길동의 다른 점은 이름의 한자입니다. 실존한 홍길동의 “동”자는 “같을 동”자를 쓰지만
소설 속 홍길동의 “동”자는 아이 “동”자를 씁니다.
이것은 허균이 실제 홍길동과 소설 속 홍길동을 구분하기 위한 장치로 보여집니다.
두 홍길동의 공통점은 도적이라는 점, 인근의 관리들을 꼼짝 못하게 한 점, 백성의 지지를 받은 점입니다.
연산군일기와 중종실록에도 기록된 홍길동은 “연산군 6년 (1500년 12월 29일) 관부에 드나들었다, 체포하여 고발하지 아니하였으 니 징계하지 않을 수 없다.” 등의 기록이 있고,
중종실록에는 중종 8년 (1513년 8월 29일) 충청도는 홍길동이 도둑질한 뒤로 유망 이 또한 회복되지 못하여/ 양전을 오래도록 하지 않았으므로/ 세를 거두기가 실로 어려우니, 먼저 이 두 도의 전지를 측량하소서라는 등의 기록이 있습니다.
조선 후기 학자 이익의 성호사설에도 홍길동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서도에는 큰 도둑이 많았다. 그 중에 홍길동이란 자가 있었는데, 세대가 멀어서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지금까지 장사꾼들의 맹세하는 구호에 이어져 있다.”등의 기록이 있습니다.
2. 임꺽정
임꺽정 역시 이익의 성호사설에 나옵니 다. 명종실록에는 “임거정이 가장 큰 괴수였다. 그는 원래 양주 백성인데 경기로부터 해서 에 이르기까지/ 연로의 아전들이 모두 그와 밀통되어 있어, 관가에서 잡으려 하면 그 기밀이 먼저 누설되었다.”등의 기록이 있습니다.
우리는 임꺽정으로 알고 있지만 명종실록에는 임거정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의 이름은 “거정”인것 같습니다.
그리고 임꺽정의 체포되는 과정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는데 “남치근을 토포사를 삼아 재령에 주둔시키자 적도가 구월산에 들어가 험악한 기지에 나눠 웅거하여 대항하였다.
남치근이 군마를 집결하여 산 아래를 철통같이 포위하니 적의 참모 ”서림“이 마침내 벗어나지 못할 것을 알고, 나와서 항복하므로 적의 허실과 정상을 모두 알게 되었다.
드디어 군사를 몰아 소탕전을 벌이는데 서림을 시켜 적당 가운데 억센 혈당 대여섯명을 유인하여 죽이니, 임꺽정이 도망쳤다.
남치근이 명을 내려 황주에서 해주에 이르기까지 백성을 모두 징발하여 사람으로 성을 만들고 문화에서 재령까지 낱낱이 수색전을 벌이자, 임꺽정이 어느 민가로 들어갔다.
관군이 바로 포위하니, 거정이 한 노파를 위협하여 “도둑이야!”하고 외치면서 앞장서서 나가게 하고 , 활과 화살을 메어 관군 차림을 하고 노파의 뒤를 따라가면서 “도둑은 벌써 달아났다. ”고 외치니, 관군들이 소란스러워졌다.
이 틈을 타 말 한필을 빼앗아 타고 관군의 총중에 섞여 있다가 잠시 후에 다시 병든 관군이라 핑계하고 진중에서 빠져 나가니, 서림이 발견하고 “저놈이 바로 거정이다”고 외쳤다. 이에 사로잡히게 되자 큰소리로 외치기를 “이건 모두 서림의 술책이였구나”라고 하였다.
3년 동안 에 몇 도의 군사를 동원하여 겨우 도둑 하나를 잡았고 양민으로 죽은자는 이루 에아릴 수도 없었던 것이다.라고 임꺽정이 잡히는 과정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명종 1559년에서 1562년까지, 3년간 활발히 활동한 도적 임꺽정은 숙종실록, 정조실록에도 도적의 대명사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3.장길산
이익의 성호사설에는 “숙종 때에 교활한 도둑 장길산이 해서를 횡행했는데 길산은 원래 광대 출신으로 곤두박질을 잘하고 용맹이 뛰어났으므로 드디어 괴수가 되었던 것이다. 조정에서 이를 걱정하여 신엽을 감사로 삼아 체포하게 하였으나 잡지 못했다.
그 후 병자년(1696,숙종 22)에 적도의 초사에 그의 이름이 또 나왔으나 끝내 잡지 못했다.“등의 기록이 있습니다.
그리고 숙종실록에는 “대신들과 비국의 여러 재상들을 인견했다. 이때 도둑의 괴수 장길산이 양덕 땅에 숨어 있으므로, 포도청에서 장교를 보내어 덮쳐서 잡도록 했었는데 관군이 놓쳐 버렸다. 대신이 그 고을 현감을 죄주어 다른 고을들을 경계하도록 청했다” 등의 기록이 있습니다.
실록에까 지 기록된 장길산은 그 뒤 잊히다가 소설가 황석영의 “장길산”으로 다시 우리에게 기억되었습니다.
4.전우치
위의 홍길동, 임꺽정, 장길산 외 한 명의 도적을 더 말하자면 위의 세명은 실록에 기록되고, 이익의 성호사설에 나온 도적이지만 이 도적은 실록에 기록되지는 않았지만. 조야집요, 대동야승, 어우야담, 지붕유설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역시 홍길동처럼 실존인물이 아닌 소설속의 인물처럼 보이지만 실존했던 인물입니다.
조선 초기 선조 때 송도(개성)의 승인문 안에 전우치라는 뛰어난 재주를 가진 선비가 있었다. 그는 자신의 자취를 잘 감추는 신묘한 특기를 가진 자였다.
이때, 남방에는 해적들이 횡행하는데다 흉년이 계속되어 백성들은 매우 힘든 삶을 살고 있었다.
이에 전우치는 선관으로 변장하여 구름을 타고 임금 앞에 나타나/ 옥황상제의 명령이니/ 하늘에서 태화궁을 지으려 황금 들보를 하나씩 구하니 만들어 바치라고 명령한다.
임금이 놀라 이를 만들어 주자 전우치는 그것을 팔아서 곡식을 장만해 빈민에게 나누어 주고 그 뜻을 널리 알렸다. 뒷날 속은 것을 알게 된 국왕이 크게 노하여 전우치를 엄벌하려고 전국에 체포형을 내렸다.
전우치는 이런 말을 남깁니다. “대개 나라는 백성을 뿌리삼고 부자는 빈민이 만들어 준 것인데 양순한 백성과 충실한 일꾼들이 이렇듯 참혹한 지경에 이르렀으나 벼슬한 이가 길을 트지 아니하고 감열한 이가 힘을 내고자 아니함이 천리에 어그러져 신인이 공분하는 바이므로 내 하늘을 대신하여 이러저러한 방법으로 하였으니 너희들은 모름지기 이 뜻을 깨달아 잠시 남에게 맡겨 놓은 것이 돌아온 줄로만 알고 남의 힘을 입은 줄 알지 말지어다.”
전우치는 자기를 잡으러 온 포도청 병사들을 도술로써 물리치고, 환술로써 임금을 농락하고 쉽게 탈출하고 그러다가 스스로 임금에게 나아가 자수를 하고 무관 말직을
돕게 되면서 조정에서 벼슬아치들의 비행을 징벌합니다
그러다 자신에게 불만을 품은 벼슬아치의 모함에 말려 역적의 혐의를 받자 조정에서 도망쳐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