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
"결국 이해하지 못하는 모양이군, 안 그래? 우리에게 있어 진정으로 강한 힘은 바로 친구에 대한 충실함에서 나오는 거야. 그게 우릴 오우거나 트로그, 심지어 고블린과 구별해 주는 점이라고. 그래서 드워프들이 멸종 직전까지 갔던 우리를 도와주고, 자기들의 신성한 전당 일부에서 우리가 머물 수 있게 선뜻 내어줬던 거야. 또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드워프, 인간, 드레나이, 나이트 엘프가 모두 자기네 것도 아닌 이 도시를 되찾으려고 여기 굴 속에서 우리와 함께 죽어갔던 거라고. 우리 친구이기 때문에 그들은 여기서 우릴 도와준 거야, 시코. 내 친구들이라고. 그건 절대 수치로 표현할 수는 없는 힘이야."
기계박사가 쉬잇 소리를 냈다. 겔빈은 이번에는 그 소리가 시코의 일그러진 입에서 나온 소리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시코는 앞으로 나섰다. "그냥 눈을 감고 내가 이 부끄러운 상황을 끝내주게 해주면 안 될까?"
시코는 땜장이왕 바로 앞에 멈춰 서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손을 들어 올려 작별을 고했다. 그 손은 톱니바퀴 소리와 함께 원을 그리며 회전하고는, 전투복의 강철 손목 안으로 사라졌다. 텔마플러그는 낄낄 웃으며 팔을 앞쪽으로 들어 올렸다. 다시 한번 증기가 분출되더니 살벌한 칼날이 손목 끝에서 뻗어 나왔다. 칼날은 기계적인 열기로 빨갛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겔빈은 뒤로 물러나서 앞서 솟아나온 구동축에 기댔다. 강하게 감긴 용수철이 척추에 닿는 게 느껴졌다. 허리띠 안에는 아직 렌치가 있었다. 그는 렌치를 들어 올려 시코의 칼날을 막아냈다. 이 모습을 본 시코는 다시 한 번 낄낄 웃었다.
"아이고, 친구. 여기서 내려다보니 아주 깜찍한데? 드워프들이 그렇게 싸우라고 가르쳐 주던가?"
"아니," 손가락 사이로 렌치를 돌리며 겔빈이 말했다. "이건 노움의 싸움법이야. 머리 조심해."
겔빈은 돌아서서 구동축에 감긴 용수철을 고정하는 걸쇠를 렌치로 때렸다. 함정의 아래쪽 뼈대에 연결된 걸쇠였다. 걸쇠가 철컹 소리와 함께 열리면서 용수철이 구동축에서 풀려났고, 응축되어 있던 강력한 힘을 순식간에 쏟아내며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날카로운 휙 소리와 함께 회전하며 방 전체를 휩쓸었다. 겔빈은 머리 위로 엄청난 힘이 지나가는 것을 느꼈고, 그 뒤로는 정적만이 남았다.
그는 돌아서 뒤를 돌아봤다. 트로그들은 침을 흘리며 서 있었다. 시코는 다시 낄낄대며 웃었다.
겔빈의 정수리에서 자라던 쓸쓸한 머리카락 세 가닥이 천천히 눈앞으로 떨어져 내렸다.
뒤이어 방 안의 트로그 머리가 모두 떨어졌다.
마지막으로 시코 텔마플러그의 전투복 몸통이 두 동강 나 떨어졌다. 뜨거운 증기가 분출되면서 전투복 위쪽 절반이 미끄러지듯 겔빈 앞에 떨어져 굴렀고, 그의 다리에 부딪혀 위를 바라보며 멈췄다. 전투복 주인은 침을 꿀떡 삼키고는 두 눈을 여러 번 깜빡였다.
시코는 놀랐다.
시코는... 혼란스러웠다.
"내... 내 다리가 저쪽에 있는데." 시코는 여전히 그대로 서 있는 전투복 아래쪽 절반을 가리키며 말했다.
땜장이왕 겔빈 멕카토크는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숙여 시코의 기계화된 어깨를 토닥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