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치미를 떼다
“시치미”는 무슨 뜻일까요?
우리가 흔히 염치없이 거짓말을 하는 사람에게 “시치미를 뗀다”라고 말을 합니다.
오늘은 이 말의 어원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고려시대 우리나라는 원나라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수년간 엄청나게 싸웠지만 몽골에서 사냥을 하는 유목민족에게 패배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도 칭기스칸은 원나라를 세운 이후 고려만큼 끝까지 투쟁을 하면서 싸운 나라는 드물 정도입니다. 유럽 대부분의 나라는 바로 쉽게 정복을 당했지만 고려는 많은 투쟁을 하고 많은 피해를 본 유일한 나라입니다.
아무튼 고려가 원나라에게 정복을 당한 뒤 “응방”이라는 매의 훈련시키고 좋은 매를 고르고, 매를 공물로 원나라에게 바치는 관청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는 매를 생활 속에서 거의 사용하지 않았지만 유목민족인 원나라는 매가 없어서는 안 될 정도로 중요했습니다.
원나라의 영향으로 고려 시대의 귀족들은 매사냥을 즐겼습니다. 당시에 매는 훈련을 시켜야 사냥의 용도를 사용이 가능했고 훈련된 매는 상당히 비쌌습니다.
새라는 것에 이름을 쓸 수도 없고 민가로 새가 날아가 버리면 찾을 길이 없었습니다.
그런 경우를 대비해서 매의 꼬리에 주인의 이름과 주소 등의 정보를 새긴 얇은 뼈를 매의 꽁지깃에 달아둔 것이 시치미입니다. 주인의 이름을 적어 놓은 시치미를 매달아 놓아 주인 있는 매임을 표시한 것입니다.
하지만 시치미를 달고 있는 매의 시치미를 떼어 버리고 주인이 오면 자신의 매라고 우기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또는 자신이 가지고 다니는 시치미를 달아서 자신이 키운 매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런 일이 일상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다 보니 고려시대부터 “시치미를 뗀다”라는 말이 쓰이게 되었고 오늘날까지 쓰이고 있습니다.
당시 값비싼 매를 보고 견물생심으로 욕심을 내는 사람들이 오늘날에만 존재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예나 지금이나 값비싼 물건만 보면 욕심나는 것은 사람이라면 당연한 결과라고 해야 할까요?
지금도 몽골의 유목민족은 매를 이용하여 사냥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고려시대와 같이 훈련된 매를 자신의 매라고 우기는 몽골의 사람들이 있을지가 궁금합니다.